
네리
열두 살, 혼자, 엄마가 위로 갔기에 올라가는 아이.
- 계단을 센다. 집에서 도리이까지는 108계단이었다
- 아무도 듣지 않을 때 불꽃에게 말을 건다
- 용감하지만 겁이 없지는 않다. 결코 싸우지 않는다
- 짧은 검은 단발, 빨간 머리끈, 바람의 방향을 알려 주는 긴 빨간 목도리

진짜 1868년의 일본과 꿈속의 건축. 네리가 손대는 것은 모두 실제로 있었어요. 탑만이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한 높이예요.
에도 시대가 끝나 가는 일본. 나무, 한지, 청동, 밧줄, 옻칠. 나룻배, 여행 궤짝, 기름 등불. 전기도 강철도 없고, 1868년에 없던 것은 하나도 없어요. 수평선에 검은 배들이 보이고, 모두가 무언가 바뀌려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래전부터, 등불지기들은 저녁마다 탑에 올라 꼭대기의 불을 밝혔어요. 그 빛이 탑들을 깨어 있게 했고, 정원과 정원, 섬과 섬을 이어 주었어요.
어느 밤, 등불이 하나둘 꺼지더니 온 하늘이 어두워졌어요. 길은 어긋나고 종은 멈추고 세상은 잠들었어요. 누가 불을 껐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아직은요.
꿈인 것은 건축뿐이에요. 구름바다 위 바위 바늘 끝에 탑이 서고, 폭포는 안개로 쏟아지고, 문이 섬 위에 떠 있어요. 봄에는 열 층 남짓, 마지막에는 거의 백 층. 중력은 정직하지만, 크기는 꿈 그대로예요.
벽이 계단이 돼요. LUMA의 모든 벽은 이음매가 보이는 돌과 한지예요. 네리가 이음매를 당기면 벽은 팝업북처럼 한 칸씩 펼쳐져 계단이, 다리가, 발코니가 돼요. 이 게임의 단 하나의 동사예요.
네리가 쓴 접힘은 되돌아갈 때 가는 금빛 줄을 남겨요. 깨진 그릇을 금으로 잇듯이요. 탑에 불이 켜지면 빛은 바로 그 줄을 따라 흘러내려요. 같은 탑을 남기는 사람은 둘도 없어요.
하나는 등불지기였어요. 불빛이 꺼진 밤, 하나는 자신의 등불을 딸에게 건네고 가장 높은 계단을 올라갔어요. 그 뒤로 네리의 단서는 단 하나. 엄마는 위로 갔다.



게임의 그림체로 그린 캐릭터 설정화. 아무도 연설하지 않아요. 모두가 주변 공간을 바꿔요.

열두 살, 혼자, 엄마가 위로 갔기에 올라가는 아이.

언제나 한 탑 앞에 있는 것 같은 작은 붉은 개.

자신의 등불을 건네주고 안개 속으로 올라간 사람.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 한 등불지기.

불이 꺼졌어도 여전히 순찰을 도는 1868년의 사람들.

빛을 필요한 곳으로 돌려 주는 사람.

키보다 긴 노와 모든 물살을 꿰뚫는 눈.

마치 갈 곳을 아는 듯, 늘 한 굽이 앞에 있다.

벽 저편에서 길을 열기도, 닫기도 한다.

은백색 머리와 얼음 결정의 옷.

대숲에 사는 작고 하얀 정령들.

상아색 종이로 접고, 가장자리는 금빛.
네 계절, 일곱 곳, 한 해. 퍼즐의 정답이 아니라 주제와 분위기를 담았어요.

벚꽃 정원과 박하색 지붕 위로 내리는 아침 햇살. 네리는 혼자, 계단을 세고 불꽃에게 말을 걸며 올라가요. 첫 탑들에 불을 밝히고, 세상이 얼마나 높은지 처음으로 느껴요. 그리고 몇 번이고, 작은 개 한 마리가 위쪽 탑에서 내려다보다가 네리가 닿을 즈음엔 사라져요.



연못에 내리는 비, 운하의 물때, 매미와 반딧불이. 마침내 모치가 네리에게 내려오고, 네리는 엄마의 천으로 만든 스카프를 그 목에 매어 줘요. 둘이 되니 모든 것이 따뜻해요. 그래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어요. 스미가 먼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여름 신사에서 여우 가면 소년에 대한 믿음이 시험받아요.



하늘 해적선이 네리와 모치를 구름바다 너머로 데려가요. 그곳에는 연꽃과 버드나무와 돌다리의 물의 도시가 있어요. 고리 모양으로 지어져, 시장도 수문도 물과 함께 오르내려요. 세상은 슬픔보다 커요.

무거운 기와지붕 아래 어두운 마당, 젖은 화강암, 드문드문한 등불. 이곳에서는 소리 나는 것과 빛나는 것만이 중요해요. 커다란 청동 범종, 불 땐 구들 위의 따뜻한 바닥, 뒤에 선 그림자를 비추는 창호지 문. 귀 기울이는 장이에요.

돌아온 네리 앞의 나라는 둘로 갈라져 있어요. 성벽마다 깃발, 무너진 길, 먹의 잠에 얼어붙은 마을 사람들. 네리는 결코 싸우지 않아요. 전쟁은 저 먼 곳에 있고, 네리는 다른 길을 찾아요.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고립된 마을에 쌀을 올려 보내고, 두 가문 사이의 다리를 내려요. 모든 막은 승리가 아니라 이어짐으로 끝나요.

눈, 얼어붙은 폭포, 은청색 그림자, 산꼭대기의 사당. 추위는 온기가 놓아줄 때까지 모든 접힘을 붙잡아 둬요. 탑은 아흔 층에 이르고, 스미가 눈 속을 따라와요.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온기의 겨울이에요.

어느 겨울밤, 네리는 낯선 이들이 온 나라의 꿈을 꿔요. 벽돌과 나무의 항구, 등대, 외륜선, 그리고 발걸음마다 뒤에서 한 번 더 울리는 발소리. 꿈이면서, 일본 너머에 있는 것을 엿보는 순간이에요.

수평선의 청록빛, 안개 속의 검은 배들. 청록색은 LUMA의 다른 어디에도 나오지 않아요. 낯선 이들의 색이에요. 그 빛이 이끄는 곳에서 LUMA I의 여정이 끝나고 LUMA II가 시작돼요.
하나의 불꽃. 숨은 이음매를 보여 주고, 고리에 걸면 접힘을 붙잡아 두고, 장이 끝날 때마다 놋쇠 고리가 하나씩 늘어나요.
네리가 세는 것은, 세다 보면 시간이 가지런해지기 때문이에요. 계단은 네리가 하는 모든 일의 잣대예요.
길고 가볍고 늘 움직여요. 바람의 방향을 알려 주고, 바람은 곧 단서가 돼요.
종은 깨어남, 찾아냄, 기억함이에요. 고요는 그 반대고요.
불 밝힌 세계의 따뜻한 색. 쪽빛과 초록이 그에 답해요. 청록색은 검은 배들만의 색이에요.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것은 카메라, 음악, 손끝의 진동, 몸짓이에요. 글은 짧고, 언어를 섞지 않아요.

정상의 눈 덮인 두 돌 사이에서 네리는 눌러 말린 벚꽃을 찾아요. 하나의 것이에요. 하나는 돌아오지 않아요. 네리는 깨달아요. 엄마는 빛을 되찾으려던 게 아니라, 나눠 주려 했다는 것을.
다섯 막을 지나 네리는 그림자 성의 지붕에 올라요. 꼭대기에서 네리는 등불을 스미에게 겨누지 않고, 그 발치에 살며시 내려놓아요. 하얀 가면에 금빛 금이 가요. 스미는 하나처럼,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 등불지기였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네리를 위해 계단을 접어 줘요.

마지막 먹의 물결이 밀려오고, 모치가 네리 앞을 막아서요. 아파하지 않아요. 한 줄기 빛, 마지막 꼬리 한 번, 그리고 모치는 빛이 돼요. 그 빛은 네리가 접었던 모든 탑의 금빛 줄을 따라 달려가 한꺼번에 불을 밝혀요. 그 뒤로 작고 따뜻한 빛 하나가 네리를 따라오고, 네리가 멈추면 그 곁에 앉아요. 게임은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네리와 모치의 빛은 청록빛을 따라 바다를 건너요. 검은 배가 안개 속에 닿아요. 마지막 장면은 1872년 무렵의 런던, 템스강 위의 돌다리. 안개 속 가스등과 커다란 시계탑. 네리는 난간에 등불을 올려놓고, 작은 빛이 그 곁에 앉아요. 다리 저편 끝에서 가스등 하나가 청록빛으로 흔들려요. 백 층을 오르던 여정은 세상과 같은 높이에서 끝나요. 암전. LUMA II. 그리고, 모치에게.
이야기, 등장인물, 세계: Nami Shams. 캐릭터 설정화와 지역 풍경은 게임을 위한 아트 디렉션이며, 게임 화면이 아니에요.